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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大韓民國 ] 의 정의

다양한 정보7 2012. 10. 17. 14:21

 

앨범을 꺼내보면 지나간 나의 역사를 만날 수 있지. 다섯 살 때 찍은 사진 속에 나는 시청 앞 광장에서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어. 사진 속의 사람들 모습은 모두들 행복해 보여. 지금 우리나라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야. 꿈은 이루어진대.

 

 

 

 

남한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 한 민족 두 개의 국가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아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이어졌어. 그런데 한반도에 아직 남아 있는 일본군을 돌려보낸다는 이유로, 미국과 소련이 각각 들어왔어.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점령했지.

38도선은 이렇게 단순한 경계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 되었어. 혼란 수습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영국, 미국, 소련의 외무장관1)들은 5년 동안의 신탁 통치를 결정했어. 신탁 통치란 우리나라가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없으므로 일정기간 동안 다른 나라가 통치해 준다는 거야. 남한에서는 이를 반대했고, 북한에서는 소련의 지시를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반대하다가 나중에 찬성하게 되었어. 결국 유엔에서는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고,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해서 정부를 만들려고 했지. 김구는 반대했지만, 1948년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어. 물론 북한에도 새로운 정부가 만들어졌지.

6·25 전쟁 - 민족의 분단

소련, 중국과 비밀리에 조약을 맺은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남한을 침략했어. 전쟁 시작 3일만에 서울이 북한의 손에 넘어갔고, 부산으로 임시 수도를 옮긴 우리나라는 유엔3)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어. 우리 군대는 다시 북쪽으로 계속 진군하여 압록강까지 올라갔지만, 북한과 손을 잡은 중국군이 쳐들어 오면서 밀려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38도선 부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3년간이나 계속되었어.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맺어져 우리 민족은 씻을 수 없는 비극의 상처를 남기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어. 6·25 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는 ‘냉전’이라는 상황에서 우리 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눈 슬픈 전쟁이야

 

 

 

정치·경제의 발전 - 아~ 우리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
6·25 전쟁이 끝난 후 우리나라는 국민 총생산4)이 60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전 세계에서도 가난한 나라에 속했어. 농업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해 왔고,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는 우리 기업이 성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계속되는 경제 개발 계획으로 1960년대에 경공업이 발달하였고, 19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이 발달했어.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의 근대화를 이루는 한편,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드는 고속 국도가 개통되었어.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 만큼이나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낸 거야.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었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되었어. 지금은 농촌과 도시, 지역 간의 차별 없이 누구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어.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선출되었어. 하지만 독재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이승만은 학생과 시민들의 4·19 혁명으로 물러나야만 했어. 이후에 들어선 정부에서도 혼란이 계속되자, 군인이었던 박정희5·16 군사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박정희는 경제 성장에 중점을 두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어. 하지만 유신 체제5)라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독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닦다가 결국 암살당했지.

이후에도 전두환의 군사 정부가 이어지자,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어. 그리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벌어졌지. 이러한 민주화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시민들과 함께 성장했어. 지금은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 5년을 임기로 우리나라를 통치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서양에 비해 매우 짧지만, 많은 시민들의 희생을 통해 오늘날까지 발전해 온 거야. 앞으로도 우리 대한민국은 누구나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해야 할 숙제가 많아.

 

 

 

더 알아보기쓰레기통에서 핀 장미꽃, 4·19 혁명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일으키고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권력에만 욕심을 부렸어. 실망한 국민들이 이승만 정부에게 등을 돌리자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를 저질렀어. 감시를 받으며 3~5명씩 공개 투표하기, 죽은 사람을 투표하게 만들기, 미리 투표함에 표 넣기 등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어. 이때 마산 상고 1학년 김주열 학생이 부정 선거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20일 만에 시체로 발견되었어.

시민의 분노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4월 19일은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피의 화요일이 되었지. 꽃 같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경찰과 충돌했고, 제자들의 희생을 볼 수만 없었던 대학 교수들도 동참했어. 노동자, 농민, 구두닦이까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지. 결국 이승만은 권력에서 스스로 물러났어. 깨어있는 시민들의 단결이 만들어 낸 민주주의의 승리였어. 당시 외국의 신문들은 4·19 혁명을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꽃’이라고 표현했어.